이 책은 지성만이 무기이고, 지성을 채득 하는 방법은 책 읽기 이므로, 우리가 어떻게 지성을 채득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책을 읽고 무슨 공부를 해야 하는지 조언해주는 책이다.
(p 196)
지금까지의 자신을 정독으로 변화시킨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는 인생에 대해 물을까.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상에서 자신이 성장하고 변화해 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이고, 성장해 가는 자신에게 매일매일 충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성장은 키나 체격이 커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곧바로 실천하고, 그때그때의 경험으로 인식과 해석이 확대되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인에게는 그런 의미에서의 성장이 사라진다. 세상의 온갖 세파에 찌든 성인일수록 자발성이 적고, 그저 생활에 필요한 임금을 얻기 위해 자신을 솜씨 좋게 도구화하기 때문이다. 그런 성인들은 톱니바퀴가 어긋난 구식 기계와 비슷하다. 종업원으로 항상 같은 일을 하고 비슷한 수단을 사용하며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또한 일상의 루틴을 안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신체의 컨디션에 따라 기분이나 감정에만 기복이 있다. 그것은 질적으로 불안정한 도구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작업을 정교하게 할 수 있는 기계로 대체되는 것이다.자신이 도구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손쉬운 방법이나 비결을 원한다. 출세의 비결, 소규모 장사로 성공하는 비결, 돈을 버는 비결,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할 수 있는 비결,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할 수 있는 비결, 행복의 비결...
비결을 원하는 이유는 어쨌거나 매사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어떤 일도 특별한 방법이나 비결 같은 지름길이 틀림없이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비결만 알면 손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결이나 방법이 각자의 능력이나 인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된다는 혹은 항상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비결은 단순히 기계적인 작업에만 해당된다. 물론 인간이 관여하는 아주 사소한 일도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항상 같은 결과를 얻을 수도 없다.
그런데 어떤 특별한 비결을 운운하는 책이 유행하는 것은 뭔가를 할 때면 응당 거기에 맞는 수순이 있을 거라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어쩌면 묘한 신앙 같은 믿음은 한교 교육을 통해 배양되었는지도 모른다. 즉 어떤 문제라도 하나의 정답이 있고 해법의 수순이 정해져 있다는 교육이 모든 교과목에 적용되어 왔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정보의 의도대로 충분한 결과를 얻었다고 할 만하지 않을까. 모든 일을 정해진 틀대로 해야 한다고 반복하는 교육은 순종적인 직원과 공무원을 키우는데 가장 정합한 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경우에 따라 자신이 소비자나 납세자로 불려도 그것을 모욕이라 생각하지 않는 감성을 지니게 되었다.
애당초 이런 정보 관료의 의도와 교육 방침 자체가 허무주의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세금으로 자신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생활을 보장받는 일이다....
이러한 체제에서 교육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비결로 처리할 수 있다고 믿는 수동적인 태도를 지닌다. 또한 수동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이들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실은 마음속으로는 깊은 허무감을 품고 있는데, 그러한 허무를 메우기 위해 자신의 외부에서 수많은 쾌락을 찾는다.
그런 의미에서 홀로 시작하는 정독은 과거 자신의 안이하고 자발적이지 못했던 일 처리 방식이나 사고방식을 부정하는 행위가 된다. 비결도 없고, 목표도 없이 홀로 어둠 속을 걷는 과정이다. 보수도 없다. 그래서 헛된 노력이나 낭비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행위다. 그래도 역시나 정독에는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해본 적 없었던 정밀한 독서 방식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크게 뛰어넘어 새로운 자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온전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세상이 원하는 인재, 남이 말하는 기준 잣대, 지향점과 같은 세속적인 소음을 끊고 책을 정독하기를 권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오는 자신의 취향을 토대로 자발성을 찾으라고 한다.
나의 미묘한 성향 그리고 취향, 취미 같은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고유한 작은 특징들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기준이 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토대로 나만의 목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정한다.
(p 119)
읽기 어려운 고전은 ‘건너뛰며 읽기'로 시작한다.
그럼 질이 높은 책이란 어떤 종류일까. 거기에 포함되는 첫 번째가 세계적인 고전이다. 일반 서적과 똑같이 고전도 옥석이 뒤섞여 있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읽힘으로써 세계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대부분 고전을 읽지 않는다. 읽기 힘들다는 이유가 가장 큰 듯하다. 고전이 읽기 힘든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각자 자신이 왜 고전을 읽는 게 힘든지 그 이유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 이유를 알기만 하면 문제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고전이 읽기 힘든 이유는 제각가 다른 테지만,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축약해 볼 수 있다.
- 페이지 수가 너무 많아 그만큼 시간을 낼 수 없다.
- 시대 배경이나 토대가 되는 전제가 현대와 너무 차이가 난다.
- 너무 어려울 것 같다.
... 고전이 너무 두꺼워서 읽기 힘들다면 몇몇 부분만 골라 읽으면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책장이 꽂힌 책등의 글자만 보는 것보다는 몇 백 배는 더 낫다. 다만, 부분적으로 읽고 나서 느낀 것만으로 전체를 예상해서는 안 된다. 부분적으로 읽다가 점점 흥미가 생기면 그 부분이 있는 전체를 읽는다. 그 챕터가 재미있으면 다른 재미있을 것 같은 챕터를 골라 읽는다. 이런 식으로 건너뛰어 읽다 보면 마침내 전체를 읽게 된다. 책의 두께와 페이지 수가 반드시 내용의 농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두꺼운 책이라도 핵심이라 할 만한 문장이 집약된 부분이 몇 군데 있으니 그 부분을 찾아 읽으면 주장이나 요점을 파악할 수 있다. 매일같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러한 부분을 빨리 찾아내게 된다. 전문가들도 그런 방식으로 독서를 한다.
처음 입문하는 사람한테는 당연히 고전의 배경이나 토대가 되는 사상을 이해하는 게 어렵다. 그래서 처음에는 고전의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부록의 해설 같은 것을 읽으면 훨씬 좋다. 그런 의미에서 추오코론샤의 ‘세계의 명서'시리즈는 해설 말고도 사진이나 지도 등이 삽입되어 정말 편리하고 친절한 책이다. 미리 책의 해설을 읽었는데도 내용을 알 수 없다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구절이나 용어를 사전을 찾거나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등 꼼꼼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연대나 역사적 사전에 대해서는 역사 연표 등을 조사해야만 한다. 재부분의 전문가도 일일이 그런 작업을 한다.
고전은 읽기 힘들다. 그러나 힘들게 읽은 만큼 그 울림도 크다. 그래서 필자가 고전에 접근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 건너뛰면서 부분적으로 읽고 나서 흥미가 생기면 그 부분이 있는 전체를 읽는다.
- 고전의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부록의 해설을 먼저 읽는다.
- 해당 고전의 연대나 역사적 배경을 공부한다.
(p 169)
세상의 평가 기준을 자신의 평가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한정적인 사회에서 자신을 단편적으로만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욕망의 빈껍데기와 같다. 저것이 가지고 싶다. 이것을 갖고 있다. 승진하고 싶다. 좀 더 많은 돈을 손에 넣고 싶다. 한 밑천 잡고 싶다... 이런 갖가지 욕망은 세상과의 관계, 타인과의 경쟁이나 비교, 공포심이나 허영심, 자기기만, 오만 등이 촉발되어 생겨난다. 갓난아기처럼 자신만으로 충족되어 있을 때는 결코 생각나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서 세속적인 욕망이다.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은 결코 채울 수 없는 갈증과 마찬가지다. 욕망이 충족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곧바로 퇴색되어 버리고 만다. 세상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상 진정한 만족은 없다. 빈 그릇을 다 채웠을 때는 이미 그릇이 더 커졌거나 형태가 변해 있어서 금세 부족함을 느끼고 만다.
많은 사람이 그런 온갖 욕망을 진심으로 갈망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왜 그런 잘못을 범하는가 하면, 세상의 평가 기준을 자신의 평가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세상은 늘 변모하므로 평가 기준도 수시로 변한다. 그 차이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시스템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고 그 세상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괴로움이라고 인정해 버리면 그만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점은 그 고통을 개인적 생활에까지 끌어들여 자신의 인생을 왜곡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뭔가에 대해 스스로 공부를 시작했다 해도 그 동기가 세상의 평가 기준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을수록 공부는 강제적이며 더욱 고통스럽다. 일반적으로 학교 시험이나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가 힘든 이유도 그 때문이다. 힘든 상황을 더욱 배가시키는 것은 자신이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 떠벌렸을 경우다. 주위 사람들은 세상 그 자체라서 세상의 평가 기준을 이용해 무책임한 감상을 늘어놓는다. 주변의 그런 평가는 반드시 공부에 해나 의심을 내포한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공부는 의미를 읽고 언젠가 좌절한다.
내부에서 부글부글 솟구치는 힘
덧붙여 항간의 공부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 가운데 자신이 공부하고 있음을 주변에 밝히는 편이 중압감으로 다가와 공부가 더 잘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일종의 협박이다. 협박하지 않으면 사람을 움직이게 할 수 없는 것인가.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농간이다.
나는 동기부여라는 말을 들으면 비썩 마른 말의 콧등 앞에 당근을 갖다 대고 흔드는 광경이 연상된다. 이것저것 시키기 위해 이 정도의 보수를 넌지시 제시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에서 나온 말이 동기부여가 아닐까. 이런 동기부여는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내부에서 부글부글 솟구치는 힘이다. 그 힘의 종류와 방향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고독한 이틀을 보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지 계획을 세울 때에도 일단 자발성이 근저에 없다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또 어떤 일을 하든 스스로 좋아서 하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갓난아기는 우리의 모범이 된다. 갓난아기는 항상 자발적으로 움직이므로 어떤 결과에도 만족한다. 그런 갓난아기의 힘을 되찾기 위해 가장 먼저 고독해진 후 자신과 마주하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인간은 안정적이고 편한 삶을 살기 위해 공동체를 구성하였고, 사회를 형성했다.
우리의 행복은 관계 속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끔 격하게 외로운 때도 있지만 만남과 대화, 공감을 통해서 사회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사회 규범 속에서 다수의 합의에 정해진 규칙과 법에 맞춰 산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작가가 비판하는 세상의 평가, 그리고 동기부여를 오히려 찬성한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규칙, 법이 무조건 맞다는 말이 아니다.
분명히 그 규칙과 법의 사각지대가 반드시 존재한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본적인 토대만을 수용하고, 거기서 개인이 더 파고들어 발전시켜야 한다.
정해진 규칙을 개인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자율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사회는 토대만 제시되어야 한다.
(p 248)
포인트가 될 만한 분야를 배우고 싶다. 그 분야의 지식을 익혀 일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교양으로써 어떤 한 분야에 대한 깊은 조예를 갖고 싶다 혹은 뭔가를 공부하여 자신의 인생에 무기로 삼고 싶다.
이런 마음은 잘 안다. 공부를 통해 확실히 뭔가를 얻고 싶은 것이다. 뭔가를 얻어 자신의 능력 중 하나로 삼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나 일종의 의욕은 자격증을 취득하여 전문직에 종사하려는 사람과 비슷하다. 공부와 같은 일종의 노력의 대가로 뭔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점에서는 그렇게 포괄적인 의미에서 소유를 원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 많이 팔린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 아마추어를 상대로 하는 책도 그렇다. 요리책이라면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방법이 알기 쉽게 되어 있다. 그대로 따라 하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이 싸고 간편하게 뭔가 가치 있는 것을 얻으려 책을 구매한다.
내가 ‘그건 정말 야비한 근성이다'하고 비판한다 해도 그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부하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일단 공부를 진지하게 시작하고 또 계속해 나간다면 나는 그들을 더 이상 야비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부를 계속해 나가는 동안 그 사람은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말로 요리 공부를 하려고 한다면 학창 시절에 힘들어했던 화학이나 물리도 공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본이 되는 조미료의 순서가 왜 ‘사시스세소(일본 음식에 들어가는 기본 조미료의 순서를 말한다. 조미료의 이름 중 한 글자를 따서 정해진 말이 ‘사시스세소'이다. 즉 ‘사'는 ‘사토-설탕', ‘시’는 ‘시오-소금’, ‘스’는 ‘스-식초’, ‘세'는 ‘세-간장', ‘소'는 ‘미소-된장'이다.) 인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았을 때 누구나 지금까지의 자신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 변하는 것이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사법시험을 공부하는 사람은 나는 야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합격하여 법률이란 무엇인가 하는 단계까지 폭넓게 끊임없이 공부한다면 나는 그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 사람은 공부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함무라비 법전>까지 읽고, 더 나아가 가치나 선악에 대한 철학까지 손댈 수밖에 없게 된다.
작가는 사회가 만든 기준만 턱걸이로 넘길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탐구하고 공부하기를 바란다.
비록 사회가 만든 기준을 통해 무언가 되었다 하더라도 탐구심을 잃지 않고 더 깊은 지식을 파고드는 자세를 바란다.
이런 게 앞서 작가가 이야기한 내부에서 부글부글 솟구치는 힘에 의한 공부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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